자연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방식,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흐름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마지막 장이다. 과거에는 죽음 이후의 공간을 가족들이 오랜 시간 돌보고, 후손이 조상을 모시는 전통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구조, 1인 가구 증가, 무연고 사망자 급증, 고령화, 도시화, 기후 위기 등의 복합적 요인들이 기존 장례 문화를 흔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죽음을 과시나 의례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연의 순환 안에서 소박하게 마무리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친환경 자연장’이다. 자연장은 매장과 화장의 대안으로, 유골을 인공 시설 없이 흙에 되돌려 생태계를 해치지 않고,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 돕는 장례 방식이다. 이 개념은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장례’가 주목받으면서, 각국은 자국의 환경과 문화에 맞는 형태로 자연장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자연장 실태와 절차를 먼저 살펴본 뒤,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 선진국의 자연장 제도와 철학을 비교 분석해본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자연장이라는 방식이 단지 ‘저렴한 장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윤리적 선택’이 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자연장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 제도, 절차, 현실
한국에서 자연장은 2013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 자연장이란, 화장 후 유골을 분말(2mm 이하)로 가공한 다음, 지정된 자연장지의 흙과 섞어 묻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전통적인 납골묘나 봉안당과 달리, 인공 구조물 없이 자연 속에 스며드는 장례 방식으로, 토양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한국의 자연장은 공공 자연장지와 민간 자연장지로 나뉘며, 공공시설은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서울시립 승화원, 부산 금정 자연장지, 대전 정수원 자연장지 등이 있다. 이용자는 보통 해당 지역 주민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며, 일부는 예약제로 운영된다. 신청 절차는 다음과 같다:
- 화장 후 유골을 분말 처리
- 관할 자연장지에 예약 및 신청
- 현장 상담 후 안치 위치 확인
- 매장 방식 설명 후 유골과 흙을 섞어 매장
- 표식 없이 자연 상태로 복귀
비용은 평균 10만~40만 원으로, 다른 장례 방식보다 저렴하고,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자연장지는 교외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며, 유골을 뿌린 후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점에서 일부 유족은 심리적 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현재 국내 자연장지는 전체 화장자의 2~3%만이 이용하는 실정으로, 제도적 홍보나 사회적 인식은 아직 부족한 편이다.

해외의 자연장, 철학과 방식이 다르다 – 미국, 영국, 독일 사례 비교
세계적으로는 미국, 영국, 독일 등 환경의식이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연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자연장을 단순한 ‘대체 장례 방식’이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삶의 마지막 행동으로 인식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8년 조지아주에 최초의 ‘그린 버리얼 자연장지’가 생긴 이후, 현재는 40개 주 이상에서 Green Burial Council(그린 장례 위원회) 인증을 받은 자연장지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 자연장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묘지 형태 | 특징 |
자연형 묘지(Natural Burial Ground) | 무표식, 생분해 관 사용 |
보존형 묘지(Conservation Burial) | 자연보존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며, 장례 수익의 일부를 생태 보호 기금으로 사용 |
하이브리드 묘지(Hybrid) | 기존 묘지와 자연장을 혼합 운영 |
특히 미국은 생분해 관, 무독성 방부 처리, 무비석 매장 등을 철저히 규정하고 있어 친환경성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또한 유족에게는 GPS 좌표로 매장 위치를 안내하고, 온라인 추모 페이지를 제공해 디지털 추모와 친환경 장례가 결합되는 특징도 있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연장지를 도입한 국가 중 하나로, 현재 300개 이상의 자연장지가 운영 중이다. 대부분 비영리단체나 지역 커뮤니티가 운영하며, 나무 한 그루나 자연석을 묘표로 사용하거나 아예 아무 표식 없이 매장한다. 영국은 특히 종교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법적 규제가 간단해 자연장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독일은 산림자원을 활용한 ‘숲속 묘지(베르발둥 FriedWald)’ 시스템이 유명하다. 국가가 인증한 숲에만 자연장이 가능하며, 유골은 나무 뿌리 아래에 생분해 가능한 항아리에 담아 매장한다. 유족은 나무 한 그루를 선택하고, 이 나무가 ‘기념비’ 역할을 한다. 독일은 특히 생태 윤리와 법적 체계가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여, 자연장지를 숲 보전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한국 자연장의 과제와 미래 방향 –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가 열쇠다
한국의 자연장은 제도적으로는 명확한 틀 안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과 실제 수요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운영이 가능하고, 비용도 저렴하지만, 여전히 대중의 인식 속에서는 “자리가 없는 장례”, “추모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인식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제도 그 자체보다 자연장을 바라보는 문화적 시선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자연장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장례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연장 안에서도 디지털 추모관, GPS 위치 표식, 나무 식재 기념 시스템 등으로 유족의 정서적 연결을 유지해줄 수 있는 장치들이 도입돼야 한다. 단지 유골을 묻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지속 가능한 장례 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과 홍보도 필수적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장례를 단순히 위생 문제나 공간 활용 차원이 아니라, 생애 마지막의 사회적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친환경적 삶의 마무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특히 은퇴 세대를 위한 자연장 사전설명회, 장례 철학 교육, 장사문화 시민 강좌 등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자연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세계적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충분한 기반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연장이 ‘죽은 사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장치’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장례, 그것이 곧 사람과 환경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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