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례문화의 친환경 전환을 위한 정책 제안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지구의 미래를 바꾼다
장례는 오랜 시간 동안 ‘문화의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을 중시해 왔지만, 이제는 환경 위기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그 방식 자체를 재고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연간 사망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통계청은 2030년 이후 사망자가 매년 50만 명 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장례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에는 단순한 의례적 접근이 아니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중심에 둔 장례문화의 전환이 절실하다.
현재 한국의 장례 방식은 여전히 납골당 중심, 콘크리트 구조물 사용, 화장 후 봉안이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는 물리적인 공간 소비뿐 아니라 자재 생산, 유지 관리, 폐기 처리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 배출을 유발한다. 더 나아가 유골함, 화환, 수의, 관 등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및 합성 섬유 제품은 대부분 생분해가 어렵고, 매장 혹은 화장 시 환경에 부담을 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한국 사회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마저 환경 파괴를 가속화하는 시스템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친환경 장례이다. 수목장, 자연장, 생분해 유골함 사용, 디지털 추모 방식 등은 환경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고인을 정중히 기릴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제도와 정책은 기존 장례 방식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친환경 장례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글에서는 한국 장례문화가 친환경적으로 전환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통해, 죽음 이후까지 환경을 배려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한국 장례문화의 구조적 한계와 친환경 장례 확산의 걸림돌
현재 한국의 장례문화는 크게 매장 → 화장 → 봉안으로 전환되어 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40%대였던 화장률은 2023년 기준 90%를 넘어섰으며, 봉안당, 납골묘 등 비석을 동반하는 구조물이 주류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자연장(수목장, 산골 등)의 비율은 5% 미만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친환경 장례가 확산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도와 기반 시설의 부족이다.
우선, 수목장이나 자연장지를 이용하려면 국가 또는 지자체가 조성한 공공 자연장지를 사전 예약하거나, 민간 업체가 운영하는 유료 공간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공공 장지의 수는 매우 한정적이고, 대도시권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수도권 거주자가 하늘숲추모원(양평)을 이용하려 해도 예약 대기 기간이 길고 생전 등록제가 필요, 당장 장례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상 접근이 어렵다.
두 번째는 친환경 장례를 위한 선택지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어려운 구조’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장사시설의 종류를 매장·화장·자연장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여전히 납골시설 중심의 행정 시스템이 중심이며, 자연장에 대한 정보 제공, 이용 절차, 품질 관리 기준이 부족하다. 예컨대 유골함 하나를 고를 때도, 어떤 제품이 생분해가 가능한지, 어떤 규정을 충족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식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장례 업계의 수익 구조가 친환경 장례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기존 장례업체는 관, 수의, 화환, 장례식장 이용료 등에서 수익을 창출해왔지만, 친환경 장례는 이러한 구성 요소를 최소화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장례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는 친환경 장례를 권유할 유인이 적고, 일부 업체는 아예 해당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대중의 인식 문제도 여전히 장벽으로 작용한다.
묘비가 없거나 표식이 없는 자연장에 대해 “제대로 추모할 수 없다”는 정서적 불안, “죽은 사람을 가볍게 대한다”는 오해 등이 존재하며, 이는 특히 중장년층 이상 세대의 거부감을 유발한다. 친환경 장례가 단지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정중하고 품격 있는 작별의 또 다른 방식임을 전달하는 문화적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형 친환경 장례를 위한 5가지 정책 제안
한국 장례문화가 친환경적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정부, 지자체, 업계, 시민이 함께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제도적 기반을 확대하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다음은 이를 위한 5가지 정책 제안이다.
① 공공 자연장지 확대 및 지역별 균형 조성
현재 전국에 조성된 공공 수목장림은 약 10곳 내외로 매우 제한적이다.
수도권, 광역시, 농어촌 지역에 1차 권역별 공공 자연장지 최소 1곳 이상 설치 의무화를 법제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장례의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② 생분해 유골함 인증제 및 친환경 장례 물품 표준화
현행 장사법은 유골함에 대한 기준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환경부 또는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친환경 장례물품 인증제’를 도입하여, 생분해 유골함, 천연 수의, 무독성 관 등 장례에 사용되는 물품에 대한 공인된 친환경 인증마크 부여가 필요하다.
③ 장례식장 친환경 전환 유도 및 인센티브 제도 도입
친환경 장례 확산을 위해서는 장례식장의 구조적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친환경 식기 사용, 일회용품 감축, 조화 대신 생화 사용 등 친환경 운영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지킨 장례식장에 ‘그린 장례식장 인증제’를 도입한다면 업계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④ 생전 장례계획 등록제(예: 웰엔딩 사전계획제) 도입
개인이 사망 전에 장례 방식, 장지 위치, 유언 등을 등록하는 생전 장례계획 등록 시스템을 마련해, 친환경 장례를 미리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자체 또는 주민센터 단위로 신청 가능한 플랫폼을 마련하고, 디지털 기반으로 사후 자동 실행되는 연계 시스템도 필요하다.
⑤ 친환경 장례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캠페인 강화
친환경 장례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공감을 높이기 위해, 시민 대상 캠페인과 체험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숲 해설사와 함께하는 ‘추모의 숲 걷기’, ‘디지털 추모관 체험’, ‘생분해 유골함 만들기 워크숍’ 등을 통해 친환경 장례를 문화로서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삶의 끝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위한 예의다
장례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절차이기도 하다.
죽음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결국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마지막 선택이 된다.
그 선택이 지구를 위한 배려, 다음 세대를 위한 고려,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금은 친환경 장례가 소수의 실험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책이 길을 내고, 제도가 그 길을 지지하며, 사람들이 하나씩 따라간다면
‘삶도 죽음도 지속가능한 사회’는 분명히 실현 가능한 미래가 될 것이다.
이제는 정부와 사회가 함께 나서서, 죽음의 공간을 생명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