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

장례식장의 친환경 인증제, 해외 사례로 본 도입 방안

grandblue27 2025. 7. 13. 07:30

죽음을 마무리하는 공간, 이제는 ‘친환경’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유족이 작별을 고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인간의 삶을 기념하는 장소인 동시에, 남겨진 이들에게는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례식장은 여전히 플라스틱 사용, 전력 낭비, 화학적 방부 처리, 일회용품 과다 사용 등 비환경적 요소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단지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환경’이라는 요소가 고려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다.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의 가치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장례식장조차 환경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연간 수십만 건 이상의 장례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각 장례식장이 남기는 탄소 발자국, 일회용품 폐기물, 유해물질 배출 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환경적 부담이다.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캠페인 수준이 아닌, 제도화된 기준과 실질적인 동기 부여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장례식장 친환경 인증제’다. 이는 장례식장의 설계, 운영, 소비재 사용, 폐기물 처리 등 전 과정을 점검해 친환경성을 일정 기준 이상 확보한 시설에 대해 공신력 있는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재 일부 국가에서는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장례업계의 친환경 전환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는 환경 보호는 물론 업계의 경쟁력 강화, 소비자 신뢰 확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본 글에서는 해외의 장례식장 친환경 인증제 운영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제안한다. 이제는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공간도 지구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변화의 시작점은 바로 인증을 통한 제도화일 수 있다.

장례식장의 친환경 인증제

해외 친환경 장례 인증제 사례: 유럽과 북미의 실천적 접근

 

장례식장의 친환경화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에서는 인증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들 제도는 공공기관 또는 비영리 단체, 산업 협회 등이 주도하여 시설 운영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환경 기준을 충족한 곳에는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의 Green Funeral Certification, 미국의 Green Burial Council 인증제, 호주의 Natural End-of-Life Alliance(NELA) 등이 있다.

1) 영국 – Green Funeral Certification by The Natural Death Centre

영국은 친환경 장례문화 확산에 있어 유럽 내에서 가장 선도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비영리기관인 The Natural Death Centre는 ‘Green Funeral Director Certification’ 제도를 운영하며, 이 인증을 받은 장례식장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 생분해 유골함 사용 또는 선택지 제공
  • 불포화 플라스틱 소재 제거
  • 시신 방부 처리(embalming) 금지 또는 대체 방식 사용
  • 최소한의 전력 사용 시스템
  • 지역 생화 사용 장려, 일회용 화환 제한
  • 유해 폐기물 분리·재활용 시스템 확보

이 제도는 단순히 물리적 기준을 점검하는 것을 넘어서, 장례 철학에 대한 교육, 장례 지도사 대상 워크숍, 시민 대상 세미나 등으로 확장되어 있다. 현재 영국 내 200개 이상의 장례식장이 이 인증을 받았으며, 소비자들 역시 해당 인증 로고가 있는 업체를 신뢰도 높은 친환경 선택지로 인식한다.

2) 미국 – Green Burial Council (GBC) 인증제

미국의 GBC는 2005년부터 그린 장례(Green Burial) 문화의 확산과 인증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GBC는 장례식장뿐 아니라 자연장지, 관 제조업체, 수의 제작업체 등에도 인증을 부여하고 있으며, 시설 규모와 관계없이 친환경 기준을 만족하면 등급별 인증을 받을 수 있다.

GBC의 인증은 총 3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 Green: 기본 요건 충족 (화학처리 금지, 재생 가능한 자재 사용 등)
  • Natural: Green 등급 기준 + 지역사회 기여, 탄소 상쇄 시스템 구축
  • Conservation: 자연보전 구역 조성 포함, 생태보호 우선 운영

이 제도는 단순 인증을 넘어 친환경 장례 방식에 대한 교육 자료 제공, 소비자 대상 업체 검색 플랫폼 운영, 지속적인 현장 모니터링 등으로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3) 호주 – Natural End-of-Life Alliance (NELA)

호주에서는 정부 주도가 아닌, 시민사회와 산업계가 연합한 ‘자연적 죽음 네트워크(NELA)’가 중심이 되어 친환경 장례 가이드라인을 보급하고 있다. 아직 공적 인증제는 없지만, NELA는 자체적으로 ‘추천 장례식장 리스트’를 운영하며, 일정 기준을 충족한 장례 업체에 **“친환경 파트너 인증 배지”**를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제도화 여부와 무관하게, 장례산업 내부의 인식 변화와 친환경 전환 촉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형 친환경 장례식장 인증제 도입 방안

 

해외 사례를 통해 장례식장의 친환경 인증제가 단지 상징적인 제도가 아니라, 현실적인 변화 유도 수단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이 제도를 설계하고 도입할 수 있을까?
다음은 한국형 인증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정책 방향이다.

① 인증 주체의 설정: 보건복지부-환경부 공동 인증체계 필요

현재 한국에서 장례 관련 사무는 보건복지부가 총괄하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 인증이라는 성격을 고려할 때, 환경부와 공동으로 인증기준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협업 모델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환경적 기준을 제시하고, 복지부가 장례시설의 관리 권한을 통해 실무를 담당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② 인증 기준 요소의 구체화: 5대 항목 중심

자재 사용 기준 - 생분해 가능 자재 사용- 무독성 천연 수의 사용- 합성수지·플라스틱 최소화 환경오염 방지 및 생태 순환 유도
에너지 효율성 - LED 조명 및 고효율 냉·난방 설비 사용- 불필요한 전력 낭비 최소화 탄소배출 저감, 에너지 절감
폐기물 관리 - 조문 시 일회용 식기·컵 사용 줄이기- 음식물 쓰레기·화환 포장 분리수거 체계 구축 쓰레기 발생량 감소, 재활용 확대
추모 장식 간소화 - 생화 우선 사용 권장- 조화·스펀지 화환 사용 제한- 단순한 제단 디자인 지향 자원 절약 및 자연스러운 추모 공간 유지
친환경 안내 시스템 구축 - QR 코드 기반 부고 전달- 종이 부고장 및 인쇄물 최소화- 디지털 추모 서비스 활용 종이 낭비 방지, 디지털 접근성 향상

 

③ 인증 방식: 등급제 도입 + 인센티브 연계

영국이나 미국처럼 1~3등급 인증 체계를 도입해, 다양한 수준의 장례식장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Green(기본 충족) / Eco+ / Eco Premium 등으로 분류하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인증 등급에 따라 세제 혜택, 홍보 지원, 교육 기회 제공 등 인센티브를 연계하면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

④ 소비자 접근성 강화: 인증 업체 공개 플랫폼 운영

국민 누구나 인증된 친환경 장례식장을 검색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개 플랫폼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와 친환경 장례사업자 간 연결을 돕고, 친환경 장례 문화의 저변 확대를 이룰 수 있다.

 

인증이 만든 변화, 지속가능한 마지막 작별을 가능케 한다

 

장례는 삶의 끝을 정리하는 중요한 의식이지만, 동시에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산업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더 이상 단지 감정적인 선택만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생태 윤리를 고려한 실천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장례식장의 친환경 인증제는 바로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설의 전환을 유도하고,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며, 업계의 방향성을 친환경으로 이끄는 가장 실질적인 수단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고, 그 변화를 만들어낸 힘은 제도화된 인증 시스템이었다.

이제는 한국도 늦지 않게, 삶의 마지막 공간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친환경 장례식장 인증제는 단순한 인증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지구를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