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친환경 전환 가이드 10단계
장례문화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장례식장부터 바꿔야 할 이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그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인구 고령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까지도 재구성해야 하는 시대다.
한국에서는 매년 35만 건 이상 장례가 치러지며, 이 숫자는 2040년 이후 50만 건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거대한 장례 수요 속에서, 단순히 감정적 예우만이 아니라 환경과 미래세대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장례 방식이 필수적인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장례식장은 이러한 장례 절차의 핵심 공간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대부분의 장례식장은 화석 연료 기반 설비, 플라스틱 위주의 용품, 과도한 조화와 장식, 일회용 중심 식사 제공 시스템 등 환경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공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장례 전반의 구조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형성되어 왔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다.
이제는 장례식장도 변화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친환경 장례식장 인증제도, 그린 장례 가이드라인, 지속가능한 공간 전환 사업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그 필요성과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장례식장이 친환경적으로 전환되기 위해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단계별로 구체적인 실행 가이드를 제시한다.
단순히 권고사항이 아닌, 실행 가능한 순서와 방법을 중심으로 정리된 ‘친환경 장례식장 전환 10단계’를 통해, 지금 이 순간부터 바꿀 수 있는 첫걸음을 함께 생각해보자.
장례식장 친환경 전환의 준비 단계: 내부 진단과 인식 전환
1단계) 시설 환경 진단부터 시작하자
친환경 전환의 시작은 기존 장례식장의 구조와 운영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내 조명, 냉난방 설비, 쓰레기 발생량, 플라스틱 사용 비율, 유골함·관 자재의 재질 등 환경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를 항목별로 점검하는 내부 진단 체크리스트를 구성하자.
조명은 몇 개나 켜져 있는지, 어떤 형광등을 사용하는지, 폐기물은 분리수거가 이뤄지고 있는지, 전력 사용량은 적정 수준인지 확인해야 한다.
2단계) 운영진과 직원 대상 친환경 교육 실시
시설 점검만큼 중요한 것이 운영자의 인식 전환이다.
실제로 많은 장례식장 직원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장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친환경 장례의 정의, 실제 사례, 장점, 소비자 수요 변화 등에 대한 직원 대상 교육 또는 워크숍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관리 책임자, 조리팀, 장례지도사, 고객응대팀 등 직무별로 관련된 환경 대응 전략을 함께 나눠야 실행이 가능해진다.
3단계) 유족 안내 시스템 개선 – 친환경 장례 선택지 제공
대부분의 장례식장은 유족에게 ‘기본형 장례 패키지’를 안내하지만, 그 패키지 안에 친환경 요소는 거의 없다.
이제는 유족에게 생분해 유골함, 간소화된 장식, 생화 중심 제단, 일회용품 최소 사용 식사 옵션 등을 명확히 선택지로 안내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소비자 인식도 변화하고, 시설 운영 구조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4단계) 장례식장 홈페이지 및 예약 시스템에 ‘친환경 장례’ 메뉴 신설
유족은 장례 준비를 급박하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미리 정보를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
장례식장 웹사이트나 모바일 예약 시스템에 ‘친환경 장례 안내’ 메뉴를 신설하고, 어떤 자재를 사용하는지, 어떤 식사가 제공되는지, 어떤 인증이 있는지를 투명하게 소개하자.
이것이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고, 경쟁력 있는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첫걸음이 된다.
실행 단계: 시설·서비스의 실제 친환경화 전략
5단계) 식당/조문객 응대 공간의 일회용품 줄이기
장례식장에서 발생하는 일회용 쓰레기 중 대부분은 조문객 식사와 접객 공간에서 나온다.
플라스틱 식기, 종이컵, 비닐 숟가락 포장, 물병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스테인리스·도자기 재질의 다회용 식기 사용을 원칙화하고, 정수기와 개인 컵 제공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유족에게 ‘일회용품 없는 식사 제공’을 사전 동의받고 선택 옵션으로 제공하면 효과적이다.
6단계) 생분해 유골함, 천연 수의 등 친환경 장례용품 도입
기존 장례용품 대부분은 플라스틱, MDF, 합성섬유 등으로 제작돼 있으며 소각 시 유해물질 배출의 원인이 된다.
생분해 유골함(옥수수 전분, 점토, 대나무 등)과 무염색 천연 수의, 비코팅 소나무 관 등을 장례 용품으로 비치하고, 유족에게 해당 선택지를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친환경 유골함 구매비 지원도 시행 중이므로, 공공지원 제도 연계도 검토하자.
7단계) 조화 대신 생화 중심 추모장식 전환
장례식장의 추모공간은 대개 조화로 가득 찬 인위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조화는 대부분 플라스틱 줄기, 비닐 리본, 폼베이스 등으로 구성돼 장례 후에는 수백 kg의 폐기물로 남게 된다.
지역 화훼 농가와 제휴하거나 생화 기반 간소화 제단을 구성해 조화 대신 ‘헌화’ 중심의 장례문화로 전환하자.
이 방식은 조문객에게도 더 따뜻하고 정서적인 인상을 남긴다.
8단계) 조명·냉난방·전력 시스템 고효율화
장례식장은 일반 건물보다 전력 소비량이 높은 편이다.
24시간 조명이 켜지고, 시신 보관을 위한 냉장 설비가 상시 가동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효율 LED 조명으로 전면 교체하고, 냉난방 시스템의 단계적 제어, IoT 기반 에너지 관리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자.
초기 투자비용이 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유지비용을 절감하고 ESG 평가에서도 유리한 요소가 된다.
9단계)종이 사용 최소화: QR 부고장·디지털 추모 도입
장례 안내장, 부고, 명단표, 리플렛 등에서 발생하는 종이 사용량도 적지 않다.
이제는 QR코드 기반 부고장, 모바일 헌화 메시지, 디지털 추모 공간을 활용해 종이 인쇄물 사용을 줄일 수 있다.
SNS를 통한 부고 전달, 디지털 추모북 제공 등은 MZ세대 유족에게도 매우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10단계)친환경 인증제 또는 표준 도입을 준비하자
가장 마지막 단계는 공신력 있는 친환경 장례식장 인증을 준비하는 것이다.
앞서 정리한 자재, 에너지, 폐기물, 식사, 안내 시스템 등을 종합해 자체적인 친환경 운영 기준을 설정하고, 보건복지부·환경부 공동의 ‘친환경 장례시설 인증제’가 출범할 경우 선도적으로 신청 가능한 준비 상태를 갖춰야 한다.
민간에서도 ‘친환경 장례 파트너’ 배지를 부여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 있다.
생의 마지막 공간이 지구를 배려하는 공간이 되기 위해
장례식장은 오랫동안 바뀌지 않은 공간이었다. 슬픔을 위로하고 의례를 치르기 위해 반복되는 방식이었기에, 변화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만큼이나,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작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친환경 장례는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조명 하나, 접시 하나, 유골함 하나, 화환 한 줄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장례식장의 의지와 실천이다.
지금 준비한다면, 1년 뒤에는 인증을 받을 수 있고, 5년 뒤에는 지속가능한 장례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삶을 마무리하는 그 공간이 지구와 조화되는 공간이 되도록, 오늘부터 한 단계씩 실천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