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

슬픔을 치유하는 장례: 5가지 감정 회복 사례

grandblue27 2025. 7. 18. 17:43

장례는 이별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는 의식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남겨진 이들은 감정의 혼란 속에 놓이게 된다. 갑작스러운 상실, 아쉬움, 후회, 때로는 죄책감까지 복잡한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 감정은 장례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되기 어렵고, 때로는 수년 동안 마음속에 남아 고통을 주기도 한다. 장례는 단지 고인을 떠나보내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다. 슬픔을 직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정서적 의식이자, 유족 스스로 애도의 문을 여는 심리적 출발점이다. 특히 최근에는 친환경 장례, 자연장, 수목장 등의 방식이 확산되면서 유족들이 슬픔을 더 조용하고 깊이 있게 마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장례의 본질이 ‘보여주는 의식’에서 ‘느끼는 의식’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유족들의 경험을 토대로, 슬픔을 회복하게 만든 장례 방식 5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각 사례는 지역, 상황, 감정의 흐름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치유의 전환점’이 존재했다. 누군가의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이 이 글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장례 방식을 고민하고, 감정 회복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5가지 감정 회복 사례

회복의 시작이 된 장례, 실제 사례 1~3

 

사례 ①   ‘조용한 나무 한 그루가 위로가 됐습니다’ (서울 하늘숲추모원)

김정희 씨(62세)는 남편과 사별한 후, 서울 양평에 위치한 하늘숲추모원 수목장을 선택했다.
남편은 생전에 환경을 생각하며 수목장을 원했고, 유언처럼 남긴 말대로 가족은 조용한 숲에서 장례를 치렀다.

김 씨는 “비석 하나 없는 나무 아래에서, 유골함을 내려놓는 그 순간이 오히려 평온했다”고 말했다.
3일장 대신 간단한 입관 후 화장, 그리고 조용한 숲길에서의 안치까지, 모든 과정이 소박하고 짧았지만
그녀는 “그 나무에 손을 얹었을 때, 남편과 정말 작별을 한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매년 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남편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과 슬픔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다.
그녀는 말했다. “슬픔은 잊는 게 아니라, 나무처럼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더군요.”

 

사례 ②  ‘장례가 간단했지만, 감정은 더 깊이 울었습니다’ (부산 영락공원 자연장지)

이재훈 씨(44세)는 아버지의 장례를 부산 영락공원 자연장지에서 치렀다.
도심에서 가까운 공공 자연장지로, 화장 후 생분해 유골함을 숲속에 묻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너무 단출해 보여 불안했지만, 막상 장례를 치르며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아버지를 정말로 중심에 두고 대화할 수 있었어요.
장례식장에서는 손님 접대에 바쁘고, 뭔가 놓친 기분이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온전히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씨는 장례 후 몇 달간 심리 상담을 받았지만,
“슬픔이 천천히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었다”며 감정이 폭발하기보단 잔잔히 흘렀다고 표현했다.
그는 자연장이 ‘감정을 억지로 다루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게 만든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사례 ③   ‘엄마의 장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정수원 자연장지)

정수원 자연장은 대전에서 운영되는 사찰형 자연장지로, 종교와 관계없이 이용 가능하다.
박수민 씨(여, 38세)는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이곳에서 진행했다.
어머니는 살아 계실 때부터 “나무 아래 잠들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셨고,
가족은 생전 예약으로 장례를 준비했다.

박 씨는 장례 당일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정수원의 숲길을 따라 들어가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서로 손을 잡고 울었고, 그 시간 자체가 위로였어요.”

장례 후 박 씨는 “매번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정수원의 나무와 햇살을 떠올리며 눈물이 멈춘다”고 말했다.
장례는 단지 이별이 아니라, 감정을 흘려보내는 장치가 되었고, 그 덕에 이후의 삶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감정의 흐름을 바꾼 회복 사례 4~5

사례 ④  ‘장례는 짐이 아닌 선택이 될 수 있구나’ (강원도 민간 자연장지)

유정열 씨(남, 58세)는 장남으로서 부모의 장례를 도맡아 치러왔다. 형식적으로 완벽한 전통 장례를 치렀지만, 정작 그는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장모님의 장례를 맡았을 때, 그는 자연장을 제안했다. “묘지를 만들고 봉분을 세우는 방식이 오히려 너무 무겁더군요. 장모님은 평소 조용한 분이셨기에, 자연 속 장례가 더 어울릴 것 같았어요.”

강원도의 한 민간 자연장지에서 진행된 장례는 형식보다 의미를 중심에 두었고, 유정열 씨는 처음으로 ‘이별을 받아들였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처음엔 죄책감이 있었지만, 숲길을 걸으며 그 감정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지금 그는 매년 장모님을 추모하러 조용한 숲을 찾고, 그 시간 동안 자신도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사례 ⑤  ‘아버지는 나무가 되셨고, 나는 덜 외로워졌어요’ (생전 예약 수목장 사례)

이현정 씨(여, 50세)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평생 각별했지만, 동시에 미완의 대화도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생전에 “죽으면 나무로 돌아가고 싶다”며 수목장을 예약했고, 이 씨는 그 뜻을 그대로 따라 아버지를 서울 근교의 수목장림에 안치했다.

“처음엔 너무 허전했어요. 묘비도 없고, 아무 흔적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변하는 걸 보면서, 이상하게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 같았어요.” 이 씨는 자연이 감정을 품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감정을 흘릴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복이 시작되더군요. 이제는 숲에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말을 건넬 수 있어요.”

 

장례는 슬픔을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흘려보내는 시간이다

 

위의 5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감정 흐름은 억지로 참는 슬픔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슬픔이다. 친환경 장례, 수목장, 자연장은 복잡한 절차보다,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구조화돼 있다. 슬픔은 시간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 감정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그 감정에 어떤 환경을 주느냐에 따라 회복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진다. ‘잘 보낸 장례’는 화려한 상차림이나 큰 봉분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되고, 고인을 기억하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장례는 결국, ‘이별의 감정을 치유하는 시작점’이자, 삶을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