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

친환경 장례 법제화를 위한 국가별 추진 로드맵 정리

grandblue27 2025. 7. 19. 15:29

지속 가능한 장례를 위해 ‘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음은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으로 가장 민감한 의례 중 하나다. 오랫동안 장례는 종교와 관습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왔고, 국가나 정부는 이에 깊게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기후 위기, 자원 고갈, 국토 과밀화, 그리고 인구 고령화라는 복합적인 문제는 죽음 이후의 처리 방식마저 사회적 책임과 정책적 개입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친환경 장례 방식에 대한 법적 제도화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각국은 장례 방식을 개인의 취향이나 종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환경과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법적 틀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삶의 마지막 장면’까지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을 요구받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본 글에서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친환경 장례 법제화를 위한 국가별 로드맵, 즉 입법 배경, 시행 방식, 시민 참여 구조, 정책적 방향성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향후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법제화를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도 함께 제시한다.

친환경 장례 법제화를 위한 국가별 로드맵

미국 – 주 단위 입법으로 실험적 친환경 장례 확산 중

 

미국은 연방 정부보다 주 정부의 입법 권한이 강한 구조 덕분에, 장례문화 역시 지역마다 다르게 운영된다. 이로 인해 미국은 가장 다양한 친환경 장례 방식이 제도적으로 실험되는 나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체 퇴비화(Natural Organic Reduction)의 법제화다. 워싱턴 주는 2019년 세계 최초로 인체 퇴비화 장례를 허용했으며, 이후 캘리포니아, 뉴욕, 오리건, 콜로라도 등 총 8개 주가 이를 합법화했다. 인체 퇴비화는 시신을 식물성 재료와 함께 생물학적으로 분해해 약 1~2㎥의 유기 토양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으로, 법적 허용 이후 장례 서비스 산업에서 빠르게 수용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알칼리 수분해(Alkaline Hydrolysis), 즉 수용액 기반 장례도 약 28개 주에서 허용하고 있다. 이는 화장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1/10 이하로 줄어들기 때문에 ‘가장 친환경적인 장례 기술’로 불린다. 이처럼 주 단위로 법제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배경에는 시민단체의 정책 로비, 장례 산업의 수요 변화, 기후 위기 대응 전략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시민단체의 역할이 크다. 예를 들어, Recompose, Return Home 같은 친환경 장례 스타트업은 입법 청원, 캠페인, 교육 세미나 등을 통해 정치권과 협력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법제화 로드맵은 시민사회, 업계, 정치가 삼각축을 이루는 구조로, 한국이 벤치마킹하기에 적절한 사례다.

 

유럽 – 규제 속에서도 공공 중심의 친환경 장례 제도화

 

유럽은 전체적으로 장례 관련 법률이 보수적이고 체계화되어 있는 반면, 공공 중심의 친환경 장례 정책 추진이 매우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기본적으로 시신은 반드시 화장 또는 매장해야 하며, 유골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2001년부터 수목장(Waldbestattung)을 공식적으로 허용했고, 현재 전국에 80개 이상의 Friedwald 자연장림이 운영 중이다. 독일은 이 장례 방식을 연방 차원에서 법제화하고, 공공 기관이 관리하는 방식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영국도 친환경 장례에 있어 빠른 속도로 공공 제도를 확장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현재 약 270개 이상의 녹색 묘지(Green Burial Site)가 운영 중이며, 이는 대부분 지방 정부, 자선 단체, 민간 협동조합이 공동 운영하는 방식이다. 영국은 법적으로 생분해 유골함 사용, 비영구적 묘지 조성, 자연 환원 가능한 장례 설계를 인정하고 있으며, 장례 인증제도(Natural Burial Certification)도 도입해 일정 기준을 충족한 장례 사업자에게 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 국가들의 로드맵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법률 구조 안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장례 공간’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그 가치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려는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공공기관이 주도적으로 장례 공간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민간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

 

아시아와 한국 – 제도적 가능성은 있으나 실행력은 낮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장례문화가 종교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경우가 많아 법제화보다는 관습 유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과 한국을 중심으로 친환경 장례 제도화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樹木葬(수목장)’이 2010년대 이후 대중화되었고, 일부 사찰과 시민단체가 자연형 묘역을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아직 인체 퇴비화나 수분해 장례에 대한 법제화는 없지만, 생전 장례계획 제도(終活, 슈카츠)를 장려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08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수목장과 자연장이 합법화되었으며, 해양산골도 허가를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법적 제도화는 비교적 빠르게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 수목장림의 수가 매우 부족하고, 법적 요건이 까다로워 이용률이 낮은 상황이다.
또한 생분해 유골함, 인체 퇴비화, 알칼리 수분해 등 혁신적인 장례 기술에 대한 법적 정의나 기준이 전무하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안전 기준이나 인허가 절차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결국 법은 있지만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적 공백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에서 친환경 장례 법제화를 위한 현실적인 로드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존재하는 제도를 실행 가능하도록 단순화하고 명확화해야 한다. 동시에 시민단체와 업계의 참여를 보장하고, 생전 장례설계 제도, 친환경 장례 인증제, 공공 장례 공간 확보 계획을 단계적으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실험적 장례 정책(예: 친환경 장례 바우처, 자연장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 입법 전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국이 가야 할 친환경 장례 법제화의 미래 방향

 

지금 세계는 친환경 장례라는 새로운 가치 아래서 장례법의 재구성과 미래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기술 중심의 장례 방식에 대해 지역 단위에서 실험하며 빠르게 법제화하고 있고, 유럽은 공공 중심의 장례 공간을 통해 지속 가능한 장례 문화를 제도화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방식으로 장례문화의 간소화와 친환경화를 추진 중이며, 한국은 법적 기반은 갖췄으나 실행력과 확산력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법제화 로드맵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1. 정의의 확대: 장례법 내에 ‘친환경 장례’의 개념을 명문화하고 범주를 세분화한다.
  2. 인증제 도입: 친환경 장례 시설, 용품, 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인증을 부여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3. 공공 인프라 확보: 수목장림, 자연장지, 해양 산골지 등 공공형 장례공간을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확장한다.
  4. 민간 기술 도입: 인체 퇴비화, 수분해 장례 등 신기술의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과 기준 수립을 병행한다.
  5. 생전 설계 제도화: 생애말기 선택권을 존중하는 ‘프리엔딩 제도’와 ‘장례 신탁 제도’를 통해 시민의 사전 선택을 보장한다.

친환경 장례는 이제 문화나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이자 정책적 책임이다. 법이 움직여야 변화가 실현된다. 죽음을 둘러싼 법과 제도가 한 발 앞서 움직일 때, 우리는 더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