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주도로 인증제를 시범 운영할 때 필요한 정책 체크리스트 10가지
장례문화의 전환, 지자체가 시작해야 하는 이유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장례문화를 중앙정부 중심으로 관리해왔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같은 국가 단위의 법령 체계, 국립묘지와 같은 중앙시설 위주의 정책, 장례절차에 대한 통일된 기준은 일정한 질서와 일관성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환경, 인구, 문화의 변화는 이제 중앙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장례체계를 설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친환경 장례 방식의 확대와 인증제 도입은 지역 사회 특성과 시민 수요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시민과 가장 가까운 행정조직이며, 장례시설, 묘지, 수목장림, 산골 허가지, 노년 인구 통계 등 지역 자원과 데이터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주체다. 또한 최근에는 장례바우처, 자연장림 조성, 공공장례 지원 등에서 지자체별 차별화된 실험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시범사업으로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본 글에서는 지자체가 친환경 장례 인증제를 시범 운영할 경우,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정책 체크리스트 10가지 항목을 선정하고, 그 각 항목이 어떤 실행 단계를 필요로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 글은 정책 기획자, 시·군·구 행정담당자, 장사정책 실무자에게 실질적인 로드맵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제도 설계 초기 단계에서 반드시 준비해야 할 5가지 항목
1. 지자체 내 장사 행정 현황 데이터 확보 및 분석
인증제의 성공 여부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결정된다. 지자체는 우선 자치단체 내의 장례 관련 시설, 수목장림, 묘역, 화장장, 자연장지, 해양산골 허가지 등의 현황을 데이터로 정리해야 한다.
해당 정보에는 시설 수, 운영 주체, 사용률, 대기 인원, 지역별 선호도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통계청, 행안부, 보건복지부의 공공 데이터와 연동해 현실 진단이 가능해야 한다.
2. 지역 기반 친환경 장례 유형 정의 및 우선 대상 설정
친환경 장례는 지역의 생태 환경, 문화 인식, 시설 접근성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어야 한다. 예컨대 산림이 많은 지역은 수목장 중심으로, 바닷가 근처 지역은 해양 산골 중심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인증제 시범 운영의 대상 범위도 우선 한두 가지 유형부터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안정적이다.
3. 인증기준(초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참여 기반 조성
기준이 없는 인증은 공허하다. 지자체는 해당 분야의 환경전문가, 장례업계 대표, 시민단체, 유족 대표 등을 포함한 ‘친환경 장례 인증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들과 함께 인증 기준 초안을 공동 개발해야 한다. 이는 제도 수용성과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이다.
4. 인증제 운영 전담 부서 또는 위탁 기관 지정
지자체 내 기존 장사 담당 부서가 있다면, 해당 부서를 ‘친환경 장례 인증 TF’로 확장하거나, 별도 위탁기관(예: 환경재단, 공공장례재단 등)에 운영을 맡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증 심사, 현장 실사, 민원 대응, 데이터 관리 등을 전담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5. 시민 대상 홍보 및 설명회, 사전 수요조사 실시
정책은 사람에게 다가가야 움직인다. 시범사업을 시작하기 전, 지역 주민 대상 설명회, 간담회, SNS 안내, 설문조사, 읍면동 공무원 교육 등 다층적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 설문조사를 통해 수요 예측과 장례 인식 변화 정도를 미리 파악하면 시범사업 설계가 훨씬 현실적이 된다.
시범사업 실행 단계에서 요구되는 5가지 핵심 항목
6. 인증 대상 시설 및 서비스에 대한 인증 기준 시범 적용
본격적인 시범 운영에 들어가면, 우선적으로 지역 내 하나 이상의 장례시설(공공 수목장림, 자연장지, 해양산골 등록지 등)을 지정하고 인증기준 시범 적용을 실시해야 한다. 이때 현장 실사 체크리스트, 유골함 분해 실험, 시설관리 기준, 장례 절차 검토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7. 인증 장례 방식 이용자에게 실질적 인센티브 제공
시범사업은 행정적 테스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민의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실천적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증 장례 방식을 선택한 시민에게는 장례 바우처 제공, 유골함 비용 일부 지원, 수목장 임대료 감면, 교통비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연계해 실제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
8. 인증 로고·마크 개발 및 홍보물 일괄 통합 시스템 구축
시민이 인증된 장례를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지자체 전용 친환경 장례 인증 마크나 라벨을 개발하고, 장례식장·공원묘지·구청 민원창구 등에 부착할 수 있도록 안내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웹사이트, QR코드, 앱 안내 시스템을 통합 구축하면 실효성이 높아진다.
9. 시범운영 모니터링 및 시민 피드백 수렴 체계 가동
인증을 받은 장례시설이나 용품을 이용한 시민, 장례업체, 담당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시범운영 후 만족도 조사, 개선점 회수, 인터뷰 등 다각적 평가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이 데이터는 향후 제도 정착 시 중요한 증거 기반(Evidence Base)이 된다.
10.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조례 개정 및 중앙정부 건의 자료 마련
시범운영이 일정 기간(예: 6개월~1년)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지역 조례(장사 조례, 지원 조례 등)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중앙정부에 법 개정·예산 확대·지침 보완 요청을 공식적으로 건의할 수 있는 보고서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보고서는 타 지자체의 모범 사례로도 활용될 수 있고, 정부 시범사업 확대 시 선도 지자체로 지정받을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제도 설계가 아닌 ‘실행 설계’가 지자체 성공의 열쇠
친환경 장례 인증제는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행정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화·환경·산업·삶의 철학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복합 정책이다. 따라서 지자체가 시범 운영을 주도할 경우,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실행력과 시민 수용성 중심의 운영 전략을 우선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이 글에서 제시한 10가지 체크리스트는 각각 개별적이면서도 상호 연계되어야 하는 필수 항목이며,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정책 신뢰도와 참여율 모두 낮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시범사업은 단기적 사업평가보다 장기적 제도화를 위한 실험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감내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며, 시민의 변화된 목소리를 경청하는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친환경 장례 인증제는 제도화를 넘어 문화적 실천으로 정착될 수 있다.
지금 이 작업을 시작하는 지자체가 대한민국의 장례문화를 바꾸는 선도 행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