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

친환경 장례-'인간 퇴비장' 우리 나라에도 도입 가능할까

grandblue27 2025. 7. 23. 08:10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의 시작이다’ – 인간 퇴비장의 탄생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전통적으로 죽음은 삶의 끝, 소멸의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자원순환의 관점에서 본다면,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전환의 문일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에서 조용히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장례 방식, 바로 ‘인간 퇴비장(Human Composting)’이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 퇴비장이란 사람이 사망한 후 시신을 화장하거나 매장하지 않고, 특수한 환경 속에서 토양 미생물, 식물성 부재료(톱밥, 짚 등)와 함께 생분해 과정을 거쳐 약 30~45일 만에 고인을 완전히 흙으로 환원시키는 장례 방식이다. 이 방법은 매장처럼 땅을 오염시키지 않고, 화장처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고인의 유해를 생명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비옥한 흙으로 변화시키는 자연 순환형 장례 방식이다. 미국 워싱턴 주는 2019년 세계 최초로 이 장례 방식을 합법화했고, 현재까지 캘리포니아, 오리건, 뉴욕 등 10여 개 주에서 ‘인간 퇴비장법’을 통과시키며 제도화를 진행 중이다. 인간 퇴비장은 과학, 철학, 환경,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 방식으로 평가되며,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생명의 순환에 대한 사유를 요구하는 실험적 장례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친환경 장례- 인간 퇴비장

인간 퇴비장의 작동 원리 – 과학과 자연의 협업

인간 퇴비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 방식은 복잡해 보이지만, 기본 원리는 자연이 수백만 년 동안 해오던 생분해의 원리를 통제된 환경 속에서 인위적으로 가속화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퇴비화 장례는 시신을 금속이 아닌 면, 리넨 등의 생분해 섬유로 싸서, 톱밥, 짚, 식물성 퇴비재와 함께 밀폐된 통(캡슐) 안에 넣고, 온도와 습도, 산소 유입을 조절한다. 이 과정에는 화학물질이나 첨가제가 사용되지 않으며, 온도는 대략 55~70도 사이로 유지된다. 이 온도는 대부분의 병원성 미생물을 사멸시키기에 충분하여 위생적이고 안전하다. 특히 시신과 함께 넣는 퇴비재는 미생물의 활성화를 촉진시키고, 조직 분해를 빠르게 유도하는 동시에 냄새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퇴비화가 완료되면 생성된 토양은 유족에게 반환되거나, 고인의 유언에 따라 숲에 기부되기도 한다. 미국의 한 친환경 장례 스타트업 ‘Recompose’는 고인이 환원된 흙을 도심 외곽 산림 생태복원지에 기증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즉, 이 방식은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지구를 위한 ‘영양분’으로 돌려주는 상징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과학은 이렇게 인간의 유해조차 생태계의 일부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지 물리적 변환이 아니라,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다.

인간 퇴비장이 가지는 환경적·사회적 의미

왜 사람들은 인간 퇴비장에 주목하는 걸까?

 

첫째 이유는 환경적 파급 효과 때문이다. 일반 화장 1건은 약 245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이는 자동차 800km 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통적인 매장의 경우에도 시신 방부제, 콘크리트 봉안함, 석재 묘비 등으로 인한 토양오염, 산림 훼손, 지속 불가능한 토지 사용 문제가 존재한다. 이에 비해 인간 퇴비장은 CO₂ 배출량은 ‘제로’에 가깝고, 오히려 탄소 저장 및 토양 회복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의미는 사회적 비용 절감이다.
미국 기준으로 화장은 평균 7,000달러(약 900만 원), 매장은 10,000달러(약 1,3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인간 퇴비화는 대략 5,000~6,000달러 수준으로, 장례비를 절감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자연 친화적 유언을 남기고 싶어 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생전 선택할 수 있어, 장례 문화를 자율성과 철학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세 번째는 문화적 차원이다.

퇴비장 방식은 죽음을 ‘사라짐’이 아니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감’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 방식은 유족에게도 죽음을 더 부드럽고,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도구가 된다. 일부 유족은 고인의 유해가 환원된 흙에 나무를 심거나, 도시농장에 기증하거나, 꽃을 피우는 형태로 기억을 시각화한다. 이는 추모의 방식 자체가 고정된 묘비에서 벗어나 순환의 상징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 퇴비장의 쟁점과 한국 도입을 위한 고려사항

인간 퇴비장은 매장이나 화장보다 훨씬 혁신적이지만, 그만큼 윤리적, 종교적, 제도적 쟁점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인간을 퇴비로 만든다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며, ‘사람을 쓰레기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도 존재한다.
종교계 일부에서는 사람의 시신을 농업용 토양으로 전환하는 것이 경건함을 해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현행 한국의 장사법 체계는 화장 또는 매장 외의 장례 방식에 대해 명확한 법적 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방식을 도입하려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 환경법과 위생기준 정비 등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제도적 검토를 끝내고 실제 상용화가 시작된 만큼, 한국 역시 미래 장례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퇴비장 방식의 제도화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한국형 퇴비장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 시신 처리 후 잔여물의 위생성과 안전성 보장
  • 유족 동의 및 생전 사전 선택 의무화
  • 퇴비 사용처의 제한(산림 복원, 공공 녹지 등)
  • 종교·문화적 다양성 고려한 설계
  • 투명한 관리 시스템과 감시체계 구축

결국 인간 퇴비장은 단지 죽음을 처리하는 방법이 아니라,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다시 묻는 방식이다.

인간 퇴비장,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되돌리는 실험

‘인간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이제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인간 퇴비장은 단지 친환경이라는 기능적 측면을 넘어서, 죽음 이후에도 지구에 어떤 영향을 남길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율성을 제공한다. 이 선택은 단지 장례의 방식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철학이자,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선언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나는 죽고 난 뒤에도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수목장을 알아보고, 자연장지를 찾으며, 유골함 대신 퇴비화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새로운 죽음의 문화와 기술을 수용할 준비를 할 시점이다. 물론 인간 퇴비장은 한국 정서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이 방식에 대해 더 많은 대화와 이해, 그리고 제도적 검토를 해야 한다. ‘죽음조차도 지구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이 급진적인 가능성은 단지 과학의 진보가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과 윤리의 진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장례문화의 실험이다. 그리고 이 실험은 언젠가 우리의 마지막 선택지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