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와 환경 문제
죽음마저도 기후위기 대응의 대상이 되는 시대
2020년대 중반을 지나며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식사, 소비, 이동은 물론, 심지어 죽음조차 탄소중립의 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그 가운데 친환경 장례는 전통적 장례방식에 비해 환경 부담을 줄이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철학적 삶의 마무리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시도는 장례라는 민감한 영역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기술 발전이나 철학적 가치만으로 확산되기 어렵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장례를 둘러싼 신뢰 위기, 제도 미비, 사회적 논란, 윤리적 쟁점 등 다양한 이슈들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건들은 향후 정책 설계와 시민 수용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2023~2025년 사이에 발생한 대표적인 친환경 장례 관련 이슈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 장례문화의 변화 흐름, 논란 사례, 제도화 과제, 한국의 대응 현황을 4가지 주제로 정리하여, 향후 친환경 장례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한 기반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미국 콜로라도 시신 방치 사건 – 신뢰 없는 친환경 장례는 재앙이다
2023년 10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운영되던 한 친환경 장례업체가 약 190구 이상의 시신을 냉장보관 없이 방치하여 부패를 초래한 사건은 전 세계 친환경 장례 시장에 경고를 울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업체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표방하며 매장이나 화장이 아닌 자연장 방식으로 고인을 처리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수개월 동안 축사 창고에 시신을 쌓아두고 악취가 날 정도로 관리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건이 알려지자 유족 수백 명이 정신적 충격을 호소했고, 콜로라도 주정부는 2024년 1월 해당 유족들에게 약 1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결정했다. 미국 언론은 이 사건을 "친환경 장례라는 이름으로 방치와 은폐가 정당화된 사례"라며 비판했고, 사회적으로도 "친환경"이라는 단어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큰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단지 운영자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친환경 장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감독 체계가 부재한 구조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향후 모든 국가가 친환경 장례 도입 시 반드시 윤리성, 위생관리, 법적 책임, 시민 보호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강력한 교훈을 남겼다. 현재 미국의 5개 주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연장 관련 법안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들도 인증제도 설계를 강화하고 있다.
인간 퇴비장과 수분해장 – 미래 장례의 기술화와 윤리 논쟁
기존의 장례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술 기반 장례 방식들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을 중심으로 도입 중인 ‘인간 퇴비장(Human Composting)’과 ‘수분해장(Water Cremation, 알칼리 수분해)’이 있다. 이 두 방식은 모두 화장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죽음을 자연적 방식으로 환원시키려는 목적에서 개발되었다. 인간 퇴비장은 시신을 생분해 가능한 재료와 함께 특수 챔버에 넣고 약 30~45일 동안 미생물 분해를 통해 흙으로 환원하는 방식이다. 수분해장은 고온의 알칼리 용액 속에서 시신을 분해하여 골편만 남기는 방식으로, 화장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90% 이상 낮고 에너지 효율도 월등하다. 영국은 2023년부터 수분해장을 합법화했으며, 현재 6개 도시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종교적 수용성, 문화적 이질감, 윤리적 해석에 대한 논란이 공존한다. 일부에서는 "사람을 흙이나 물로 녹여버리는 방식이 존엄성을 해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에서도 이들 방식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거나 “사후에 신학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Z세대와 친환경 가치에 민감한 시민층에서는 “죽음조차도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철학적 공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장례기술이 단순한 기능을 넘어 미래 세대가 스스로 선택 가능한 삶의 마지막 방식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법·제도 미비와 수요 확대 사이의 간극
한국은 여전히 장례문화가 화장 중심(90% 이상)으로 정착되어 있으며, 친환경 장례로 인정받는 방식은 일부 수목장과 자연장이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환경보전법과 장사법의 사이에서 법적 근거가 중복되거나 애매한 구조로 되어 있어,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장례시설 허가, 부지 선정, 운영 기준 등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시민의 수요는 계속해서 다변화되고 있다.
“묘를 남기고 싶지 않다”
“부모 유골을 수목에 안치하고 싶다”
“장례에 플라스틱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례 후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남기고 싶지 않다”
이러한 시민적 요구가 많아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제도화하거나 인증하고 감독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는 거의 없다. 현재 한국은 수목장림조차 국공립은 4곳, 민간은 수십 곳 수준이며, 민간 수목장의 경우 환경파괴, 사후관리 부실 등의 문제로 종종 언론에 부정적으로 보도되기도 한다. 시민은 친환경 장례를 원하지만, 실제로 선택 가능한 장례 상품은 제한적이고, 정보도 불투명하며, 정부의 인증제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친환경 장례를 위한 국가 표준 인증제 도입, 지자체 차원의 조례 제정과 교육 캠페인 강화, 그리고 장사법·환경법·산림법 등 관련 법령 간 통합적 연계 작업이 필요하다.
친환경 장례의 미래는 ‘신뢰·제도·문화’가 함께 가야 한다
친환경 장례는 더 이상 소수의 선택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 고령사회 진입, 묘지 부족, 시민의 인식 변화 등 모든 요소가
전통적 장례의 한계를 넘어서야 할 시점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기술과 수요가 빠르게 확산되는 반면,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적 기반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이제 한국도 결단할 시점이다.
“지속가능한 죽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누구나 존엄하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떠날 수 있도록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인가”
“친환경 장례가 오히려 사회적 불신을 낳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윤리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정부, 지자체,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가 함께 협력하는 친환경 장례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생전 유언, 시민 인식교육, 장례지도사 윤리교육, 제도적 인증기준 설계 등 ‘한 사람의 마지막 여정을 존엄하게 만들기 위한 종합적 생태계 설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친환경 장례의 본질은 “자연으로 돌아감”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사람다운 이별”을 위한 사회 전체의 선택지 확대에 있다.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삶의 철학도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