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떠난 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장례는 고인을 위한 마지막 예식이지만, 동시에 남겨진 가족에게는 슬픔을 정리하고 삶을 다시 이어가기 위한 심리적 전환점이 된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친환경 장례 방식, 그 중에서도 ‘자연장(自然葬)’은 기존 장례 문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별을 경험하게 한다. 자연장은 유골을 분말 형태로 만든 후, 인공 구조물 없이 숲이나 나무 아래에 묻는 방식으로, 고인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장례다.
하지만 이 방식은 물리적인 묘소가 없고, 표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겨진 가족의 입장에서는 전통 장례 방식과는 또 다른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 어떤 이들은 더 깊은 자연의 위로를 경험하지만, 어떤 이들은 “어디에 절하러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
장례의 간소화가 오히려 가족의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 글에서는 실제 자연장을 선택한 가족들의 심리적 변화와 후속 감정에 관한 인터뷰 사례 3건을 중심으로, 자연장이 가족의 슬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단지 자연장을 선택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이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어떤 파장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리움 대신 고요함이 찾아왔다" : 서울 마포구 김정현(가명) 씨의 사례
김정현 씨는 60대 중반의 여성으로, 2022년 봄, 남편의 장례를 경기도 양평 하늘숲추모원의 자연장 방식으로 진행했다. 부부는 생전부터 “우리 죽으면 복잡한 묘지 말고 숲 속 나무 아래서 쉬자”고 약속했고, 자녀들에게도 이 뜻을 명확히 전달해 두었다. 김 씨는 장례 후 1주일이 지나 고요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슬펐어요. 그런데 묘지 찾아가서 돌 닦고 잡초 뽑는 대신,
나무를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그 사람이 아직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눈물도 났지만, 그리움이 아니라 편안함에서 온 눈물이었어요.”
김 씨는 자연장이 정리된 이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다 함께 숲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바람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고인을 기억하는 과정이 오히려 “장례가 아니라 명상의 시간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이후 매달 한 번씩 숲을 찾지만, 의무감보다는 ‘자연 속 산책’ 같은 느낌으로 남편을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김 씨는 초기에는 “묘비가 없으니 어디에 절을 해야 할지 어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숲 관리사무소에서 QR코드 기반의 ‘디지털 추모 페이지’를 안내받고 난 뒤, 핸드폰으로 남편의 이름과 메시지를 보며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는 불편함이 많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묘비보다 마음속 장소가 더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남편이 사라진 게 아니라, 바람이 되어 곁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 안산시 이도윤(가명) 씨 가족의 혼란과 회복
반면, 자연장이 감정적으로 어려웠던 사례도 있다. 30대 후반의 직장인 이도윤 씨는 어머니의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른 지 1년이 지났다. 이 씨는 처음에는 “어머니가 자연을 좋아하셨기에 숲 속에 묻히는 걸 원하실 것”이라 믿고 자연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장례가 끝난 후, 그는 예상치 못한 감정의 공허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납골당처럼 명확한 공간이 없다 보니, 찾아가도 어디서 절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조용한 숲에 가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그냥 돌아오곤 했어요.”
이 씨는 특히 설 명절이나 기일 같은 날에 갈 곳이 없다는 점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었다. 주변 가족들은 전통적인 제사 형식을 중요하게 여겼고, 자연장 이후 가족 모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어머니의 부재뿐 아니라, 추모의 방식까지 변화하자 감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가 길게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자연장만의 정서적 장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 조용한 장소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천천히 정리할 수 있었고, 형식적인 절차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기억하게 되었다. 이 씨는 이후 작은 노트에 어머니에 대한 글을 적고, 숲에 가서 읽어주는 것으로 추모 방식을 바꾸었다.
“이젠 숲이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곳이 되었어요.
예전처럼 절을 하고 차례상을 차리진 않지만, 오히려 더 진심으로 기억하는 기분이에요.”
이 씨는 자연장을 선택한 것이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슬픔을 천천히 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장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형식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자연장, 남은 사람에게도 치유가 되는 방식이 되려면
자연장은 단지 고인을 위한 친환경적인 장례가 아니다. 그것은 남겨진 가족에게도 새로운 형태의 슬픔 정리 방식이자, 감정의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의례가 될 수 있다. 단, 그 과정에는 충분한 정보, 정서적 안내, 그리고 자연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감정적 설계가 필요하다.
이번 사례들을 통해 볼 때, 자연장은 누군가에게는 고요한 치유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어딘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둘은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는 자연장에 참여하는 가족들이 심리적으로도 지지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 추모 시스템, 감정 치유 안내 프로그램, 숲 해설사와의 소통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친환경 장례는 단지 자연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남겨진 이들이 상실을 회복하고, 자연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장례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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