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

전 세계 친환경 장례 정책 현황과 비교

grandblue27 2025. 7. 19. 07:30

죽음을 위한 정책이 말해주는 국가의 미래

전통적인 장례 방식은 오랫동안 각국의 문화, 종교, 사회 구조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환경 문제, 고령화, 도시 과밀화,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 문제 등이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장례 방식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특히 기후 위기를 인식한 국가들은 죽음 이후의 선택조차도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철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다양한 친환경 장례 정책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례 방식에 개입하고 규제하거나 장려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전 세계는 친환경 장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법적으로 허용된 방식은 어디까지이며, 각국의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수목장, 퇴비화 장례, 수분해 장례, 해양 산골, 생분해 장례용품 허용 여부 등을 기준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한국의 정책 현황을 비교하고, 향후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장례문화를 설계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미국과 영국 – 법제화가 빠른 실험 국가들

 

미국은 친환경 장례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제도적 실험을 해온 국가 중 하나다. 특히 주 정부 단위의 입법권이 강한 구조 덕분에 지역별로 다양한 장례 방식이 실험되고 있고, 그중 일부는 세계 최초로 법제화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체 퇴비화 장례(Natural Organic Reduction)의 법제화다. 미국 워싱턴 주는 2019년 세계 최초로 해당 장례 방식을 합법화했고, 이후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뉴욕 등 총 8개 주가 인체 퇴비화를 허용했다. 이 방식은 시신을 유기물(나무 조각, 볏짚 등)과 함께 용기에 넣고 약 30~60일간 퇴비화하는 방식으로, 장례 후에도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미국에서는 알칼리 수분해 장례(Alkaline Hydrolysis)도 상당수 주에서 허용되고 있다. 이 방식은 시신을 화학적으로 분해하여 유기물로 환원시키는 기술로, 기존 화장보다 훨씬 낮은 에너지 소비로 주목받는다. 현재까지 28개 주에서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국립묘지와 연계해 군인 장례 방식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편, 영국은 제도적으로 인체 퇴비화나 수분해 장례는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지만, 수목장과 생분해 유골함 사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 전역에는 약 270곳 이상의 녹색 묘지(Green Burial Site)가 운영 중이며, 이는 민간이나 지자체 단위로 관리되며 탄소중립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장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법제화가 빠른 실험 국가들

독일과 일본 – 보수적이지만 서서히 변하는 장례 정책

 

독일은 장례문화에 있어 비교적 보수적이고 법률 중심적인 국가다. 기본적으로 시신은 반드시 매장하거나 화장해야 하며, ‘유골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조차 불법’일 정도로 장례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하지만 환경 보호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자연장(Naturbestattung) 또는 수목장(Waldbestattung)은 2000년대 이후 빠르게 제도화되었다. 현재 독일 전역에는 Friedwald(자연장 숲)라는 이름으로 약 80개 이상의 수목장림이 운영되고 있으며, 고인의 유골을 생분해 유골함에 담아 지정된 나무 아래에 안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장례를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며, 지역 경제에도 기여하고 있다.

일본은 장례 방식에 있어 화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전체 장례 중 약 99.9%가 화장으로 이뤄지며, 납골당이나 공동묘지에 유골을 안치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목장(樹木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토야마(里山)형 자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유골을 자연과 함께 되돌리는 방식의 장례 공간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도심 외곽의 사찰이나 시민단체 주도로 조성된 공간들이 많다.
또한 일본 정부는 초고령화에 따른 장례 인프라 포화 문제를 인식하고, 친환경적이고 간소화된 장례 절차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장례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수분해 장례나 인체 퇴비화는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지 않지만, 생전 장례 설계와 간소화 장례(간단장)의 확산은 친환경 장례문화로의 이행에 긍정적인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현황과 시사점 – 제도는 있지만 확산은 더디다

 

한국은 법적으로 화장, 매장, 수목장, 자연장, 해양 산골 등 다양한 장례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특히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2008년부터 수목장이 합법화되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공형 수목장림 조성 사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또한 해양 산골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환경부의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진행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가 있음에도 실질적인 확산은 매우 더디다는 점이다. 수목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허가 절차가 복잡하며, 지자체 간 기준이 상이하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되는 공공 수목장림은 20곳이 채 되지 않으며, 민간에서는 부지 확보 및 규제 때문에 신규 진입이 매우 어렵다.

또한 생분해 유골함, 인체 퇴비화, 수분해 장례 등은 아직 법적 정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생분해 유골함은 일부 업체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공공장묘시설에서 사용을 제한하거나 묵인하는 경우가 많아 표준화된 사용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결국 한국은 제도적 기반은 갖추고 있지만, 정책 실행력과 사회적 인식, 인프라 구축 면에서는 뒤처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장례 업계가 함께 협력해 제도를 현실화하고, 시민 참여형 장례문화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해외 선진국들의 경험과 모델은 매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친환경 장례 정책,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의 영역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장례에 대한 정책은 이미 단순한 문화적 흐름이 아닌, 사회적 책임과 제도적 의무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주 단위의 입법으로 실험적이지만 빠르게 친환경 장례 기술을 수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은 녹색 장례를 위한 물리적 공간을 적극 확보하고 있다. 일본은 초고령화에 대응해 간소화된 장례와 수목장을 확대 중이고, 한국도 법적 기반은 갖췄지만 실행력과 인식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죽음을 설계하는 방식 하나하나가 생태계, 사회 구조, 세대 간 윤리적 책임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단지 장례의 절차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끝에서도 우리가 지속 가능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가 함께 진화해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장례는 환경을 보호하는 행위이자, 삶의 철학을 반영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를 위해 국가와 사회는 정책을 통해 이러한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시민은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친환경 장례는 이제 ‘가능성’이 아닌, ‘시급한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를 먼저 해결하는 국가가 미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더 빨리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