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

친환경 장례 인증제, 한국 도입 시 예상되는 문제점 5가지

grandblue27 2025. 7. 20. 09:27

인증제가 도입되기 전에 반드시 풀어야 할 구조적 문제들

한국 사회에서 ‘장례’는 단지 한 사람의 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가족 간의 책임 구조, 종교적 관념, 사회적 관습, 행정 절차, 경제적 부담 등이 모두 뒤얽힌 복합적인 의례다. 이러한 장례문화에 ‘친환경’이라는 기준을 더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인증제 도입이 추진된다면 그 영향력은 단순한 행정 변화 수준이 아니다.
그것은 장례라는 문화 자체를 구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최근 환경부, 지자체, 장례 관련 민간 단체 등에서 ‘친환경 장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인증제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한국 사회에 적용하려 할 때는 법적·제도적·문화적·산업적 저항 요인이 복합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친환경 장례 인증제를 한국에서 도입하려 할 때 가장 현실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 다섯 가지를 제도 정의의 불분명성, 행정 인프라 부족, 장례산업계 반발, 문화적 수용성 한계,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라는 관점에서 하나씩 짚어본다.

친환경 장례 인증제

‘친환경 장례’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가장 먼저 직면할 문제는 바로 ‘친환경 장례’의 법적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현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장, 화장, 수목장, 자연장, 해양 산골 등은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이 중 무엇이 ‘친환경’에 해당하고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다.
예를 들어, 수목장이 친환경 장례로 분류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 유골함을 사용하는 수목장도 존재하며, 인위적으로 벌목한 후 조성된 묘역은 오히려 생태계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또한 생분해 유골함이나 비목재 관, 종이 관 등 친환경 장례 용품 역시 관련 법령상 ‘표준’이 없기 때문에 인증 기준을 만들고자 해도 기초적인 정의 정비부터 선행돼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인증제를 도입하기 전, 정부는 반드시 ‘친환경 장례’의 범주를 과학적 근거와 환경지표에 따라 법적으로 정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민 공청회, 전문가 회의, 산업계 협의 등 충분한 절차적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정의가 모호한 상태에서 인증제를 먼저 시행하면, 혼선과 불신, 인증 남용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행정 인프라 부족과 인증 운영 주체의 현실적 한계

 

두 번째 문제는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행정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장례는 주로 보건복지부, 지자체, 민간 장례식장, 상조회사 등이 분산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장례 인증’이라는 개념을 담당할 명확한 행정 주체가 없다. 만약 환경부에서 친환경성을 기준으로 인증제를 운영하려고 한다면, 해당 부처는 장례 행정 경험이 부족하고, 실무 절차에 대한 권한도 미흡하다.
반대로 보건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인증제를 운영하려면 환경 관련 전문성, 평가 기준 수립 역량, 검증 시스템 구축 예산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증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증 심사’, ‘현장 실사’, ‘서류 검토’, ‘분쟁 조정’, ‘갱신 관리’까지 포함한 복합 행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이러한 장례 품질 인증을 전담하는 기관이나 공공 평가 시스템이 부재하다.
국가기술표준원, 환경공단, 한국에너지공단 등과 같은 기존 인증기관의 위탁 운영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장례 업계 특수성과 사회적 민감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즉, 인증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위원회나 전담 기관 설립이 사실상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법령 정비와 예산 편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제도는 시작부터 실행력을 상실하게 된다.

 

장례산업계의 이해 충돌과 인증제 반발 가능성

 

세 번째로 중요한 문제는 장례 산업계의 반발과 인증제 회피 가능성이다. 현재 한국의 장례산업은 대부분 소규모 민간 장례식장, 상조회사, 위탁장례업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기존 관행과 가격 체계, 제품 유통망에 맞춰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여기에 친환경 기준을 갑작스럽게 도입하게 되면 사업 구조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예를 들어, 생분해 유골함을 사용하라고 요구하면 기존의 플라스틱 유골함 재고가 무용지물이 되며, 화장 후 자연장 방식으로 유도하게 되면 장례식장 내 납골당 판매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증제 도입으로 장례용품에 대한 규격화가 이뤄지면, 중소 장례업체는 인증을 통과하지 못한 제품을 폐기하거나 대체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부담은 곧바로 “인증제는 소수 대기업만을 위한 특혜”라는 프레임으로 확산될 수 있으며, 일부 업체는 불법적 무인증 제품 유통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인증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장례업체에 대한 단계적 전환 지원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친환경 장례 전환에 참여하는 업체에게는 인센티브 제공, 장비 지원, 교육 프로그램 운영, 친환경 장례시설 리모델링 비용 보조 등을 통해 산업계의 저항을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는 실현되지만 현장에서는 무시당하는 이중 구조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수용성과 인식 전환이 병행되지 않으면 제도는 무용지물

 

마지막이자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가 과연 친환경 장례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까지 장례는 “체면”, “효”, “사회적 예절”이라는 가치로 포장되었고, 다소 과한 장례 소비나 절차가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친환경 장례는 이 모든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화려한 관 대신 종이 관, 납골당 대신 수목장, 식장 장식 대신 생태 추모 공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많은 가족과 유족들이 “간소한 장례 = 불효”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장벽이 존재한다.

또한 일부 국민은 친환경 장례를 “가난해서 선택하는 저렴한 방식”으로 오해하거나, “사이비 단체가 주장하는 이상주의”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해는 제도 설계보다 훨씬 더 뿌리 깊은 사회적 인식 문제다. 인증제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그것을 정당한 선택, 올바른 방향, 윤리적 장례로 인식하는 교육과 캠페인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는 제도 도입과 함께 ‘친환경 장례는 고인의 뜻을 존중하는 문화적 실천’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야 하며, 학교 교육, 노년층 대상 프로그램, SNS 캠페인, 지자체 커뮤니티와 연계한 활동을 통해 사회 전체의 인식을 점진적으로 바꿔야 한다.
인증제는 제도가 아니라 문화로 받아들여질 때 진짜 실현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이 인식의 전환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인증제가 설계되더라도 현장에서는 외면당하고 정책 효과는 제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