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에도 자연으로 순환하는 기술의 탄생
21세기의 장례문화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죽음 이후에도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장례용품 또한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혁신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버섯’이라는 생명체가 인간의 장례와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단순한 먹거리로만 여겨졌던 버섯이, 이제는 생분해 가능한 관의 주재료로 사용되며 환경보호에 기여하는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이른바 ‘리빙 코핀(Living Coffin)’이라 불리는 이 버섯 관은 단순히 썩는 소재로서의 기능을 넘어, 시신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며 토양을 정화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과학자들은 버섯의 균사체(mycelium)가 가지는 생분해성과 생태 회복 능력에 주목했고, 이를 실제 장례용품으로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시도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이미 유럽과 북미 일부 지역에서는 실사용 사례가 나오고 있으며, 향후 전 세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글에서는 버섯으로 만든 관의 원리, 실제 사례, 다른 생분해성 장례용품과의 비교,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버섯 관의 원리 – 균사체가 만드는 생분해의 마법
버섯 관의 핵심 기술은 바로 ‘균사체(mycelium)’에 있다. 균사체는 버섯의 뿌리에 해당하는 생물학적 구조로, 실제 버섯의 90% 이상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그물망 형태의 생명체다. 이 균사체는 나무, 잎, 시체 등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성장하며, 자연 생태계에서 토양을 재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과학자들은 이 균사체를 컨트롤하고 배양하여 ‘틀’에 맞게 자라게 함으로써, 자연 그대로 분해 가능한 장례용 관을 만들어냈다. 이 관은 일반적으로 왕겨, 톱밥, 옥수수 섬유 등의 농업 부산물을 재료로 삼아 균사체를 주입하고, 며칠간의 성장 과정을 통해 단단한 형태로 완성된다. 완성된 관은 외부 충격에도 비교적 강하며, 고인의 체중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구조적 안정성도 확보된다.
무엇보다 이 버섯 관은 시신을 자연 상태로 묻을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며, 매장 후 약 30~45일 이내에 자연스럽게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방부제나 금속 부속물이 전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토양 오염이 없고, 시신의 독성 물질까지 흡수·분해하는 기능이 있어 땅을 오히려 건강하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 관은 분해에 수십 년이 걸리고 유해 화학물질을 방출하지만, 버섯 관은 완전한 자연 순환을 유도하는 생태적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사용 사례 – 유럽과 북미에서 시작된 실험적 장례
버섯 관의 개념은 아직 대중적으로 보편화된 단계는 아니지만,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실제 장례에서 사용된 바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네덜란드 스타트업 Loop Biotech가 개발한 ‘리빙 코핀(Living Cocoon)’이다. 이 회사는 2020년 세계 최초로 균사체 기반의 관을 상용화했으며, 첫 번째 고객의 장례식은 언론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해당 관은 약 7일 만에 제작이 가능하고, 무게는 15~20kg 정도로 일반 관보다 훨씬 가볍다. 사용 후에는 45일 이내에 완전히 분해되며, 토양 내 유해 성분을 제거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Loop Biotech는 이외에도 버섯 기반의 친환경 관 커버, 수의, 장례용 장식품 등도 함께 개발하고 있으며, 사용자 맞춤형 디자인도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California Green Burial Council이나 Recompose 같은 친환경 장례 단체에서 이 버섯 관의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 자연장지를 중심으로 시범 도입이 진행 중이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Capsula Mundi' 프로젝트와도 협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어, 머지않아 버섯 관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처럼 실제 사용 사례는 아직 많지 않지만, 고인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 중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히 환경 문제에 민감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이 죽은 뒤 생태계를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하겠다는 의지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버섯 관 외 생분해성 장례용품의 종류와 기술적 진화
버섯 관이 대표적인 사례라면, 현재 생분해성 장례용품 시장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장례용품은 다음과 같다:
1. 종이 관 (Cardboard Coffin)
재활용지 또는 무염료 종이로 만든 관은 이미 유럽에서는 대중화된 상태다. 가볍고 저렴하며, 매장 또는 화장 모두에 적합하다. 다만 강도나 내구성 면에서는 일부 제한이 있다.
2. 대나무 및 바나나 잎 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전통적으로 대나무를 사용한 관이 사용되어 왔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들이 최근 유럽과 미국 시장에도 출시되고 있다. 바나나 잎으로 만든 관은 매우 가볍고 생분해가 빠르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실제로 사용 중이다.
3. 생분해성 수의 (Biodegradable Shroud)
면, 삼베, 리넨 등으로 만든 친환경 수의는 이제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버섯 균사체를 더한 형태도 개발되고 있으며, 천 자체에 균사체가 자라나도록 설계된 제품도 등장하고 있다.
4. 씨앗과 결합된 유골함 (Tree Pod Burial)
유골을 화장한 뒤, 생분해성 유골함에 나무 씨앗을 함께 넣어 수목장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의 ‘캡슐라 문디(Capsula Mundi)’ 프로젝트가 있으며, 생명의 순환이라는 철학적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이처럼 생분해성 장례용품은 관에만 국한되지 않고, 수의, 유골함, 장식, 장례식 자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확장되고 있다. 기술과 생태 철학이 융합되면서 죽음을 둘러싼 물질적 환경 역시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의 가능성과 한국에서의 도입 전략
버섯 관과 생분해성 장례용품은 미래 장례문화의 핵심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법적 제도와 인프라 측면에서 제한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의 규격과 사용 재질에 대한 기준이 다소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어, 버섯 관 같은 실험적 제품의 도입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자연장지 확대 정책이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친환경 장례’에 대한 정책적 검토가 이뤄지고 있어 제도적 변화가 머지않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사회 인식 측면에서도 세대 간 차이가 존재한다. 기성세대는 여전히 전통 장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MZ세대를 중심으로는 가치소비와 친환경 의식이 강해, ‘나는 죽은 후에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니즈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버섯 관 같은 친환경 제품의 국내 상용화를 촉진할 수 있는 긍정적 신호다.
한국형 생분해성 장례용품 도입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 1단계: 제도 개선 및 기준 완화 – 친환경 장례를 위한 법 개정 추진
- 2단계: 인증 시스템 도입 – 친환경 장례용품에 대한 국가 인증 체계 마련
- 3단계: 시범사업 실시 – 자연장지 내 버섯 관 시범 사용
- 4단계: 시민 인식 제고 캠페인 – 죽음에 대한 철학과 환경윤리 결합한 공공 교육 필요
결국 죽음의 방식까지도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지금, 버섯 관은 하나의 대안이 아닌 필연적인 방향일 수 있다. 삶의 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선택지가 존재하며, 그 선택이 곧 지구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다.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순환, 기술과 자연이 만나다
버섯으로 만든 관은 단지 ‘분해되는 상자’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를 상징하는 매개체이며, 인간이 환경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산물이다. 생분해성 장례용품의 진화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의 생존 조건을 고민하는 시작점이다. 오늘의 장례가 내일의 자연을 살리는 선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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