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떠나는 장례’ – 수분해장이라는 새로운 이별 방식이 주는 질문
죽음이 새로운 기술을 만났을 때, 장례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매장과 화장이 주를 이루던 장례 문화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수분해장(알칼리 수분해, Aquamation, Resomation)’이라는 장례 기술이다. 이 방식은 이름처럼 물을 이용해 인체를 분해하고, 남은 골편만 건조해 유골함에 담는 방식이다. 자극적이지 않게 말하자면, ‘조용히, 물로, 깨끗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장례’라 할 수 있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일부 주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며, 영국은 2023년부터 수분해장을 공식적으로 도입하면서 친환경 장례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 물과 알칼리 용액을 이용해 인체를 부패가 아닌 ‘가속 분해’ 형태로 흙과 비슷한 유기 물질로 환원시키는 이 방식은, 화장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90% 적고, 에너지 사용량은 1/8 수준으로, 환경적 측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은 최근 들어 수목장, 자연장, 생분해 유골함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장 중심 장례문화가 압도적인 현실 속에서, ‘수분해장 같은 기술 기반 장례는 국내에서도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수분해장이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한국에 도입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과제는 무엇인지 4가지 핵심 관점에서 분석한다.
수분해장의 작동 원리와 친환경성 – 왜 ‘물장례’인가?
수분해장의 핵심은 알칼리 용액을 활용한 인체 조직의 자연 분해 가속화다. 보다 정확하게는 95%의 물과 5%의 수산화나트륨 또는 수산화칼륨을 혼합한 용액을 가열한 뒤, 시신을 특수 챔버에 넣고 수분해 과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인체의 연조직은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액체로 남고, 뼈는 탈색된 골편으로 남는다. 남은 골편은 건조 후 유골가루처럼 가공되어 유족에게 전달된다. 이 기술은 대기 중 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으며,
-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화장의 1/10 이하
- 에너지 소비는 1/8 수준
- 수은, 납 등 중금속 발생이 없고
- 남은 액체는 pH 중화 후 하수도로 안전하게 방류 가능
따라서 수분해장은 화장보다 훨씬 환경 친화적이며, 인체에 남아 있는 임플란트나 보철물도 손쉽게 분리할 수 있어 의료 폐기물의 처리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이 기술은 단순한 분해 방식이 아니라, ‘물’이라는 정화의 이미지를 통해 죽음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화적 수용성이 높다. 특히 영국의 경우, “기계로 불태우는 대신, 평온한 물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한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앞세워 수분해장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죽음의 심리적 저항을 줄이는 상징적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공감대를 줄 수 있는 서사다.
영국의 도입 배경과 제도 설계 – 수분해장이 가능한 이유
영국이 수분해장을 도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기술의 발전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배경은 기후변화 대응과 장례산업의 탈탄소화라는 국가 전략이 있다.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장례 분야의 탄소 배출량 감축을 법제화하고 있으며, 장례시설 운영 시 CO₂ 배출과 에너지 사용량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수분해장은 화장 대비 탄소 감축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적극 도입 대상으로 분류되었고, 2023년부터 브래드퍼드, 리즈 등 일부 지역에서 공공 화장장 내 수분해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장례 비용 또한 화장과 비슷하거나 일부 지역에선 오히려 저렴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경제적 접근성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수분해를 화장 또는 매장 외의 ‘제3의 장례’로 정의하고, 위생처리법, 환경보호법, 물환경관리 규정 등과 연동해 처리 방식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또한, 유족에게는 사전 설명, 영상 안내, 선택지 제공 등을 통해 수분해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바탕으로 자율적 선택을 유도하는 구조다. 이처럼 환경 정책, 법적 정의, 시설 기준, 시민 설명체계가 통합적으로 설계된 덕분에, 영국은 수분해장을 무리 없이 제도권 안에 통합할 수 있었고, 이는 향후 한국형 수분해장 설계 시 참고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모델이 된다.
한국 도입 가능성과 현재 제약 요인 – 현실은 아직 제도 공백 상태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수분해장은 법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불가능한 상태다. 한국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사망자에 대한 처리 방식을 ‘매장 또는 화장’으로만 명시하고 있으며, 이 외의 장례 방식에 대해서는 금지하거나, 명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않고 있다. 또한 수분해장처럼 물리·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치는 방식은 일부 위생법·환경법에서 의료폐기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시신의 처리 방식으로 공식 인정되지 않고 ‘비위생적’, ‘불법적인 해체행위’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한 정부 지침이나 기술표준, 시설 기준도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에 수분해장을 도입하기 위해선 법 개정부터 시설 인허가, 시민 공감대 형성까지 전방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현실적 제약은 문화적 저항감이다. ‘불에도, 흙에도 묻히지 않고 물에 녹는다’는 개념이 일부 국민에게는 죽음에 대한 불경함이나 이질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종교계의 입장도 중요하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모두 화장은 비교적 수용적이지만 수분해장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며, 공론화 과정에서 종교계의 해석과 협의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제 막 장례문화의 다변화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수분해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지금부터 법적 정의, 위생 기준, 종교적 수용성, 시민 인식조사 등 다각도의 검토를 병행한다면 향후 5~10년 내에 한국형 수분해장 모델의 실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기술은 준비되어 있다, 이제는 제도가 따라가야 한다
수분해장은 단순한 ‘장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위기 속에서 개인의 마지막 순간조차 지구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상징하는 장례 철학의 진화다. 불이 아닌 물, 연기 아닌 순환, 소각 아닌 분해를 통해 우리는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에 더 부드럽고 친환경적인 방식을 부여하고자 한다.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장례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이 장례가 사회적 합의, 윤리적 토대, 제도적 기반 위에서 안전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은 그 출발점에 서 있다.
수분해장이 한국에서 허용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있다:
-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수분해장 정의 및 허용 조항 신설
- 위생기준, 수질 방류 기준 등 타 법령과의 정합성 확보
- 시민 대상 공론화 및 종교계 협의
- 시범시설 설치와 국비·지방비 보조 사업 설계
- 유족 선택권 보장 및 수분해장 인식 개선 교육
이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낸다면,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물로 떠나는 마지막 길’이 선택 가능한 장례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또 한 걸음 ‘지속가능한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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