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장례

장례에도 ESG가 필요한 시대 – 친환경 장례의 사회적 의미

grandblue27 2025. 7. 12. 17:40

생의 마지막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말해야 할 때

과거 장례는 단지 죽음을 기리는 의식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고,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만큼, 이제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 중심에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가치가 있다.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는 더 이상 기업만의 평가 기준이 아니다. 개인의 소비, 선택, 그리고 생애 마지막 절차인 장례까지도 이제는 ESG 관점에서 재정의되고 있다. 특히 장례 방식은 매장, 화장, 봉안, 자연장 등 각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이며, 동시에 사회와 공동체의 자원 활용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적 행위다.

친환경 장례는 단지 자연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실천이다. 이 글에서는 ESG 프레임 속에서 장례문화의 전환 필요성을 살펴보고, 친환경 장례가 왜 현대 사회에서 단순한 ‘선택지’가 아닌, 윤리적 책임이자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장례에도 ESG가 필요하다는 말은 단지 유행어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남겨질 지구와 공동체를 위한 책임 있는 삶의 마무리 방식을 의미한다.

장례에도 ESG가 필요한 시대

 

환경(Environment) – 전통 장례의 자연 파괴와 탄소 배출

 

ESG의 첫 번째 축인 ‘E’, 즉 환경(Environment)은 친환경 장례가 등장한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다. 전통적인 매장 방식은 한 명의 사망자당 평균 3평(약 10㎡)의 토지를 점유하며, 매장지의 무분별한 확장은 국토의 비효율적 사용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방부처리제, 시멘트 외장 묘지 구조물, 금속 관, 플라스틱 유골함 등은 토양과 지하수 오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매장의 정서적 안정성과 유족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그 환경적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편, 화장은 공간 효율성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화장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등의 환경 오염 물질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고령자 증가로 사망률이 꾸준히 오르는 사회에서는 화장로의 가동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장례와 관련된 탄소배출량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수목장·자연장·퇴비화 장례·생분해 유골함 사용과 같은 방식은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친환경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자연 순환 시스템에 유골을 통합하는 방식으로서, 유해물질 발생을 최소화하고, 장례시설로 인한 환경부담도 줄일 수 있다. 죽음을 통해 생명의 일부로 되돌아가는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기술적인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책임 있는 마지막 행동을 선택하는 생태적 실천이다.

 

사회(Social) – 죽음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 책임

 

장례는 개인의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행위다. 특히 도시 공간의 납골당 포화, 묘지의 무분별한 확장, 불법 산골 등은 공공 자원의 과잉 소비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서울 수도권의 납골당은 이미 대부분이 포화 상태이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신규 납골당 설립조차 주민 반발로 중단된 사례도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공간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친환경 장례는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죽음의 방식으로서 주목된다. 수목장림처럼 자연과의 조화를 전제로 한 장례 공간은 주민 반발이 적고, 숲이나 공원의 기능을 함께 제공함으로써 도시의 공공성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생분해 유골함과 같은 생태 장례용품은 장례 비용을 낮추고 소득계층 간 장례 불균형 해소에도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죽음 이후의 방식에 대해 열린 교육과 소통이 필요하다. 장례는 모든 사람이 마주하게 될 보편적 현실인 만큼, 정책 차원에서도 친환경 장례를 공공 의제화하고 장례 복지 영역에 포함시키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단지 장례방식의 선택 다양화를 넘어서, 사회적 정의와 포용을 담보하는 장례문화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거버넌스(Governance) – 제도적 뒷받침과 문화적 인식 전환

 

장례문화의 전환이 개인의 의지나 기술 혁신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거버넌스(Governance), 즉 제도와 정책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장례문화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반영한 종합적인 법적 프레임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수목장 설치 요건은 여전히 까다롭고, 개인 수목장 운영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며, 생분해 유골함이나 퇴비화 장례 방식은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상태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새로운 장례문화는 확산될 수 없다.

또한, 행정기관, 장례업계, 시민사회의 협력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친환경 장례가 '선택 가능한 서비스'로만 머무르게 된다. 정부는 친환경 장례 시설에 대한 인허가 절차 간소화, 공공 수목장 확대, 장례 복지와 ESG 정책 연계 등의 조치를 통해 거버넌스를 실현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장례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 캠페인, 생애말기 교육 프로그램, 고령자 대상 생전 장례 설계 지원 등의 활동을 통해 문화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ESG 관점에서 장례를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이 죽음을 맞는 방식에도 사회적 책임, 환경적 배려, 제도적 정합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삶의 마무리에 있어서도 ‘책임 있는 선택’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다. 친환경 장례는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새로운 윤리 기준이자 사회적 약속이다.